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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초월한 사가 I Mughal 찬란




무한한 속박으로 이끈 영원한 사랑이 사막과 같은 땅에서 전개되리라고, 또한 대리석 위의 시, 타지마할를 이 세상에 선물로 줄 수 있으리라고 누가 감히 생각할 수 있었으랴!

타지마할의 이미지를 그림으로 캔버스위에 그리든지 아니면 사진으로 찍든지간에 그 상상의 개념을 충분히 표현할 수는 없으며 또한 라빈드라나트 타고르가 ‘시간의 뺨에 흐르는 눈물방울’이라고 불렀던 그 시와 로맨스의 전설을 충분히 전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타지마할은 대리석 위에 찬미되고 보석과 준보석으로 찬양 받은 로맨스이다. 그리고 그렇게 감상하여야 한다.

타지마할의 땅, 우타르 프라데쉬는 고대로부터 문화유산이 풍부하고 정치적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타지마할의 도시 그리고 16세기부터 18세기 초까지 한때 무굴 제국의 수도였던 아그라는 인도의 수도인 뉴델리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

전세계에서 관광객들이, 장엄한 사원과 대저택이 방문객들에게 풍부한 문명을 상기시켜주는 땅, 그러나 지금은 서서히 산업사회로 진행하는 땅, 인도의 가장 유명한 경이의 건축물인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 온다

타지마할은 “영예의 궁전”(CROWN PALACE)이라는 의미이며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고 건축학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묘이다. 영국의 시인 에드윈 아놀드경은 타지마할은 “ 다른 건축물과 같은 또 다른 하나의 건축물이 아니라 돌위에 새긴 황제의 자랑스럽고 열정적인 사랑”이라고 묘사했다.

타지마할은, 무굴 황제가 1737년에 델리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무굴 제국의 중심부였던 아그라붉은성을 방어해 주는 역할을 했던 야무나 강변에 위치해 있다. 타지마할은 무굴 제국의 제5대 황제인 샤 자한이 자신이 가장 총애했던 세번째 부인인 영혼의 짝, 페르시야의 무슬림 공주였던 뭄타즈 마할을 기념하기 위해서 1631년에 건축하였다. 뭄타즈 마할은 샤 자한이 부르한뿌르(Burhanpur)에서 반란군을 퇴치하기 위해서 갔을 때 그와 함께 동행하고 그곳에서 13번째 아이를 낳은 직 후 사망했다. 황제는 그녀의 죽음을 너무도 슬퍼한 나머지 그의 모발과 수염이 몇 달사이에 눈처럼 하얗게 되었다.

뭄타즈 마할 생전에 그녀는 황제로부터 4가지 약속을 받아 냈다: 첫째, 황제가 그녀를 위해서 타지마할을 지어 줄 것; 둘째, 황제가 다시 결혼 할 것; 셋째, 자녀들에게 친절하게 잘 대해줄 것; 넷째, 매년 그녀의 사망 기일에 무덤을 찾아 줄 것. 그러나 샤 자한은 병고와 자신의 아들이며 왕위 계승자였던 아우랑제브에게 가택 연금을 당함으로 인해 마지막 약속을 계속해서 지키지는 못했다.

타지마할의 직사각형 기초는 그것 자체가 아름다운 여인을 서로 다른 면에서 보는 것을 상징한다. 결혼식 날 밤에 서두르지 않고 부드럽고 섬세하게 신부의 베일을 올리는 것과 같이 정문/대문(the main gate)은 여인의 얼굴의 베일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인도의 전통은 신부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베일을 부드럽게 올리는 것이다 일단 타지마할의 정문을 들어서면 타지마할의 모습을 드러내는 돔이 나온다.

돔은 백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무덤은 야무나 강 건너편의 평지에 세워졌다. 바로 이 배경때문에 물에 비치는 반사를 통해서 타지마할의 모습이 색의 마술을 부릴 수 있는 것이다. 타지마할의 색깔은 계절에 따라서 또 하루 중 시간에 따라서 변한다

우아하게 서있는 타지마할은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감정적이며 영원한 사랑의 비유적인 의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의미도 있다.ㅡ

타지마할을 건축할 것을 명령한 샤 자한 황제는 타지마할이 장엄함, 조화, 순결함, 그리고 영적인 것의 상징이 되기를 원했다. 타지마할은 단지 우아함과 위엄의 기념비일뿐만 아니라 “순수한 사랑은 삶의 영혼이다”라는 것을 온 인류에게 전하는 메시지인 것이다.

타지마할은 온 인류가 보편적으로 인정하기는 하지만 잘 실행하지는 않는 “사랑과 평화”라는 개념을 상기시켜 준다. 사랑과 평화는, 인종과 지리적인 경계에 의한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낙원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서 진실로 중요한 것이다

사실

가장 오래된 타지마할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 현재의 묘지의 반대편인 마흐타브 바그(Mahtab Bagh)에 샤 자한이 검은 대리석으로 건축하려고 했던 제2의 타지, 검은 타지 이야기는 꽤 많이 알려져 있다. Jean-Baptiste Tavernier라는 사람이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즉 1665년 아그라에서 샤 자한은 야무나 강 건너편에 자신의 무덤을 건축하려고 했지만 자신의 아들인 아우랑제브와의 전쟁 때문에 계획은 중단되었다. 당시 통치자인 아우랑제브는 이것을 완성하도록 할 마음이 없었다. 샤 자한은 자신의 아들이며 왕위 계승자인 아우랑제브에 의해서 강제로 가택 연금이 되었다. 아우랑제브는 대부분의 의견에 있어서 자신의 아버지와 동의 하지 않았으며 특별히 샤 자한이 자신의 무덤인 검은 타지마할을 건축하는데 반대를 했다.

Upon Shah Jahan's 샤 자한은 사랑하는 아내 뭄타즈가 죽었을 때 금으로 된 관에 그 시신을 뉘였지만, 샤 자한이 죽었을 때 아우랑제브는 자신의 아버지를 타지마할 묘지에 있는 부인 옆에 묻기 위해서 단 두사람을 시켜서 샤 자한의 시신을 보트로 옮기게 했는데 아마도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했던 것 같다.

자신의 사랑하는 이의 소원을 이루어줬던 황제 샤 자한은, 자신의 죽음 후에도 사랑하는 왕비 뭄타즈 마할을 향한 자신의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검은 타지마할을 건축하고 싶어했는데 이 소원을 끝내 이루지 못했다.

전설에 의하면 8년 동안의 병고와 가택연금 기간에, 샤 자한은 침대에 누워서 앞 벽에 박혀 있는 다이아몬드를 특수한 각도로 보면서 타지마할을 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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